한국에서 일본으로 쌀 가져가기(후기)
지난 글에서 일본으로 쌀 반입을 시도했다는 내용을 적었다.
실제로 쌀을 들고 와본 후기를 남긴다.
(현시점에서는 도쿄에서 쌀을 구할 수 있다. 예년보다 2배 정도 비싼 값일 뿐이다.)
오전 9시 비행기이므로, 집에서 5시 30분쯤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국적기를 이용하여 무료 위탁수하물이 23kg까지 허용인데, 쌀을 넣는 것을 고려해서 재본 결과, 무게가 22.5k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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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본가에 둔 짐을 가져가다보니 이미 캐리어가 무거워서 4kg짜리 쌀을 구입했고,
쌀은 일단 백팩에 집어넣었고 출발했다. 공항에서 검역을 받아야하기 때문이다.
터미널에 가서 식물검역을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검역관님이 사진을 찍고, 육안검사 시행, 무게 측정 등을 거쳐 서류를 내주셨다.
(나처럼 이른 시간에 검역을 받아야하면 사전에 미리 전화를 드리면 좋다고 한다.)
아래와 같이 플라스틱 통에 담긴 쌀을 샀는데, 이게 매우매우 좋다.
왜냐하면 이리저리 굴려보며 육안으로 쌀에 반입 불가한 이물질과 벌레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쌀포대에 들었다면 벌레를 확인하기 위해 뜯었다 재봉인을 해야 하는데,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있으면 검역관 및 여행자가 간단하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쌀을 검사받으면 서류를 한 부 내어주시는데, 검역관 서명이 중요한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실제로 일본 농림수산성 식물검역소에도 검역관 서명을 손으로 짚어가며 체크했다)
혹시 몰라 사진을 하나 찍고, 캐리어에 쌀을 옮겨담고 서류를 챙겨나왔다.
꼼꼼하면서도 부드러운 젠틀맨이 대응해주셨다.
이른 아침에 전화해서 부탁드렸는데, 짜증 하나없이 제복까지 갖춰입고 근무하시는 모습에 놀랐다.
검역서류를 받아들고, 출국심사를 마쳤다.
일본 가는 비행기에 탑승해서 출발 시간전까지 잽싸게 Visit Japan Web을 통해 입국서류를 작성했다.
검역을 거쳐야 하는 품목(=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해당 부분에 Yes로 체크하고,일본에 도착해서 QR을 제시했다.
이 Visit Japan web을 통한 전자서류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한국 국적기에서는 승무원에게 따로 요청하지 않으면
입국신고서, 세관신고서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다.
+ 2025년 어느 날 내용추가.
아시아나는 일본 입국,세관신고서를 더이상 배부하지 않는다.
기내에서 승무원에게 직접 요청했더니 Visit Japan Web(VJW)이 활성화된 이후로는 기내에 싣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Visit Japan Web으로 신고할 경우
세관신고서의 별송품(unaccompanied baggage) 역시 정상반영되므로,
세관신고품목이 있어도 과거와 달리 굳이 종이로 기입할 필요가 없다.
도입 초기에는 종이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있었는데,
현재는 VJW로 신고하고, 해당 부분에 대해 세관직원과 이야기하면 끝난다.
참고로, 신고 대상 물품을 갖고 자동심사대쪽으로 가면 어차피 세관 직원에게 잡혀서 검역 확인 등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세관신고할 것이 있으면 세관직원이 지키고 서있는 곳으로 미리 빠져나가 상담하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정리를 해보면
기존 방식 : 종이에 2부 작성 후, 1부 제출 및 나머지 1부에 도장을 받아 보관.
현 행 : VJW로 신고를 마치고 세관직원에게 별송품의 개수를 말하면
직원이 종이를 인쇄하여 도장을 찍어준다. 그것을 납세통지 또는 물건이 도착할 때까지 보관.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별송품 부분은 큰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별송품까지 가지고 일본에 입국해야 할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식물검역을 받아야 하는 품목을 갖고 있더라도 검사를 받고,
검역소의 도장(스티커)만 받으면 VJW 하나만으로 끝난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된다.
또, 나처럼 집에 보관해놓은 면세점 쇼핑백에 짐을 넣어가면 열어보자고 한다.
혹여라도 신품 또는 출처증빙이 어려운 고가품을 면세 쇼핑백에 넣는 일은 무조건 피하는 게 좋겠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반 여행자들 중 Visit Japan Web을 모르는 사람과
스마트 기기를 다루는 게 서툰 사람들은
입국 후 한참 줄을 선 끝에 심사관 앞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시기와 비행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류를 작성하고 나면 한참이나 길게 늘어진 뒷줄로 가야한다.
결국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입국해도 '외교' 가 아닌 외국인 아무개의 신분으로 입국심사관 앞에 서면 답이 없다.
아래는 쌀수입 이야기와 좀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한국 비행기(이코노미)에 타면 엄청난 인원들이 착륙과 동시에 짐을 꺼내며 통로에 줄을 서기 시작하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서 줄을 서야 심사시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적당히 앞사람들의 국적을 가늠해보고
심사가 늦겠다 싶은 줄은 피했는데, 요즘은 안내하는 곳으로만 가야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줄을 서있다보면 중장년층의 한국인이 새치기하는 모습들이 자꾸 눈에 띈다.
예전과 달리 나리타공항은 (혼잡할 때) 입국심사관을 만나기 전에
미리 서류 작성이나 지문인식, 얼굴 사진촬영을 거치도록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지문인식이나 사진 촬영 등이 원할하게 진행되지 않으면 뒤에 서있던 사람이 먼저 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걸 못참고, 직원이 안보는 사이에 일행이 있는 곳으로 줄을 넘어와 끼어드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나머지 일행의 자리를 맡아준다는 개념이 어느 정도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얄짤없는 새치기다.
인원수 예약이라든가 LINE으로 접수 가능한 곳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은 새치기에 해당한다.
한 명이 줄서는 것으로 입장이 되는 식당,
예를 들어 혼자 줄서서 2명 입장이라든지... 3명 입장이라든지 비교적 상식(??)선에서 가능한 것과
혼자 줄서있다가 나중에 일행 4명이 각각 서비스를 받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란 것을 알았으면 한다.
입국심사와 상품 구입 및 계산은 보통 후자에 해당한다.
나도 가족과 함께 입국하면 일반 줄로 서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새치기하는 사람이 자주 보인다.
공항뿐 아니라, 드럭스토어를 포함해 관광객이 많은 곳곳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어르신이라 말 안 통하는 곳에서 일행과 떨어지면 불안한가보다 하며 굳이 말않고 넘기는 편이지만,
일본인이 아닌, 같은 입장의 외국인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한번쯤 생각했으면 한다.
쌀 반입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순서를 정리해보자.
1. 입국심사
2. 식물검역
3. 세관신고
4. 공항밖으로 나갈 수 있음.
농림수산성 소속의 개 한마리가 열심히 캐리어 냄새를 맡아보지만 쌀 냄새는 무리인가보다.
자진신고하겠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식물검역소에 안내해줬다.
한국에서 작성한 식물검역 서류를 제출하고, 일본에서의 서류를 작성했다.
일본어와 영어가 병기된 서류다.
외국인 비거주자라면 여권번호를 기입할 것이고, 재류카드가 있는 사람이나 일본인은 등록된 개인정보를 기입한다.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육안검사를 받고(투명한 통이 역시 좋다)
농림수산성 날인, 날짜 기입을 받고 세관에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개인이 자가소비용으로 연간 100kg까지 수입할 수 있는데
반입량을 매번 농정국장에게 신고하게 돼있다.
나처럼 쌀을 또 가지고 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과연 있을까?)
지난번에 얼마를 가지고 들어왔는지 알고 있을 필요가 있으므로 사진을 찍어두고, 원본은 세관 통과 후 버려도 된다.
세관 통과시에는 검사에 통과했다는 서류만 보여주면 되므로 쌀을 다시 보여줄 필요는 없다.
만약 쌀, 채소 등을 가지고 오는데 검역을 안 받았다면 검역소에서 몰수당한다.
내 앞에 검사를 받던 한국인들은 상추 등을 모조리 내놓고 왜 통과가 안되는 거냐며 화를 내다 떠났다.
양으로 봐서는 아무리 봐도 자가소비용 같았는데 룰은 룰이니까 ^^;
이 룰(검역)이 있기 때문에 양곡업자가 아닌 이상,
우송(郵送)으로 쌀을 정상적으로 통관시키기 어렵다.
검역소에서의 느낌은 이렇다.
식물(?)뿐 아니라, 고기가 들어간 그림이 있으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애초에 육류 포함 제품은 일본에 갖고 들어갈 생각을 않는 게 마음 편하다.
간식거리든, 진공포장이든, 기내식으로 나온 것이든 거의 대부분의 경우 육류는 안된다.
쌀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무사히 집까지 옮겨왔다.
이후에 가까운 대형 할인점에 갔더니 쌀이 아예 없지는 않고 팔기는 하는데,
千葉(치바)산 저렴한 제품은 1인당 1포로 제한돼있고, 값이 한국보다는 비쌌다.
전체적으로 どんぶり(덮밥류) 취급하는 식당의 가격도 쌀 때문인지 오른 느낌이다.
아내는 吉野家(요시노야)를 잘 가지 않는데, 규동 세트 가격을 이야기했더니 뭐가 그리 비싸졌냐고 놀랬다.
만약 내가 일주일 전에 송파에서 먹은 규동 세트 가격을 알면 기겁했을 거다.
된장국에 파를 얹은 규동이 1.1만원 가량이었는데..^^;
일본의 쌀품귀 현상으로 생각도 않은 경험을 해볼 수 있어서 재밌었지만,
그래도 좀 저렴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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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어느 날 추가.
이 글을 공개한 이후로 블로그에서 한국 일간지 기자로부터 정보제공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시기상 인터뷰를 할 정도의 화젯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코멘트로 대신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주제였나봅니다.
유입검색어를 살펴보니
기후변화에 따른 일본의 식량난을 알고 싶다거나, 한국에서 일본으로 쌀을 보내려는 분들도 계시네요.
꼭 한국산 쌀을 먹이고 싶다면 직접 들고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상사맨도 아니고, 한인타운에 거의 가질 않아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만일 한인타운에서 판다고 해도 그동네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일부러 한국산을 사먹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쌀의 성질상 부피도 크고 보존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고 무겁기까지한데,
검역을 거쳐 관세(https://www.maff.go.jp/j/seisaku_tokatu/boeki/attach/pdf/kome_yunyuu-48.pdf)를 맞은 뒤에
유통마진까지 붙이면 일본산 쌀보다 경쟁력이 있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내 유통되는 쌀값도 워낙 올라서 말이죠.
정말로 규제를 돌파할 경쟁력이 있었으면 이미 작년 추수전에 한국산 쌀이 곳곳에 자리했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수매를 줄이고, 수출로 전환할 수 있었을지 모르고요.
한일 양국의 쌀 소비량이 점점 줄어간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일본에서도 '쌀' 농사를 보호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 가족이 맛있는 밥을 해먹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면,
쌀보다는 밥솥을 좋은 것으로 사주세요.
p.s. 작년 작황이 좋지 않아, 흑미는 24년 햅쌀보다 23년산의 품질이 더 좋은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