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도 일하는 이곳, 도쿄.
1. 일본 사람만 있어서 친절하다?
도쿄 23구 특별구는 땅값이 비싸서 전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나서지 않으면
근처에 대형마트는 찾기 어렵지만, 적당한 수준의 슈퍼는 있습니다.
밤에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서 만나면 중형견인가 싶을 정도로 통통하게 살찐 고양이가 사는 조용한 주택가.
늘 고양이가 앉아 있는 담벼락 길을 지나 슈퍼를 갑니다.
뭉툭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지만 휴대폰을 꺼내 들 참이면 여유로운 모습으로 사라집니다.
특별한 관광지로 소개될 만한 곳은 없어서 여행자를 만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절대 가이드북에 소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날 정도로 여유롭기에 저는 이곳을 좋아합니다.
이곳의 슈퍼에 가면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즉석조리 음식을 만들어 내오는 분도 어르신, 계산을 하는 분도 어르신.
이러한 어르신이 아들보다도 어린 제게 반말을 할까요?
아니요, 형식적이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말투로 접객합니다.
심지어 계산이 끝나면 가볍게 허리를 숙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음식의 맛이 떨어지거나 계산 실수가 있거나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2. 외국인이 많아서 친절해?
한국인뿐만 아니라 서양인들도 많이 찾는 上野(우에노).
외국인이 많아서 일본인보다 눈에 띄는 외국인을 찾아내는 게 쉬울 정도라는 우스갯소리도 가능할 만큼 붐빕니다.
우에노동물원은 판다를 비롯해 여러 동물을 찾아볼 수 있으며 동물 특성에 맞는 사육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인기입니다.
이곳은 크게 좌우로 나뉘어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이 있는데, 올라올 때는 힘이 들기 때문에 150엔을 내고 티켓을 구입하면 모노레일을 탑승할 수 있습니다.
이 모노레일의 티켓을 걷는 것도 어르신들이 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는 "와! 여기는 어르신도 일을 시켜주네. 정말 인간적이네."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3. 국적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노동력 부족은 신문이나 뉴스에서만 다뤄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봐도 좋은 조건에는 사람이 몰리기 마련이지만
평범한 곳이거나 일이 다른 곳보다 더 힘들어 보이면 괜찮은 시급을 제시해도 사람을 구하지 못합니다.
가게 앞에는 정성껏 쓴 손글씨 POP로 아르바이트, 직원 모집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편의점 '로손'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외국인을 어떻게든 데려다 쓰고 싶어서 비교적 장기 계약을 맺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지간하면 일본 사람에게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조건으로 파견하거든요.
저 스스로 외국인이면서도 여러 가게에서 느끼는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의 접객 태도는 썩 좋지 않은 편입니다.
한국, 중국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베트남 같은 동남아시아계의 유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늘었습니다.
모 백화점 연결통로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데, 외국인의 억양이 강한 여성이 앉아서 계산을 했습니다.
점원이 여럿 있는 곳에서는 슬쩍 명찰을 훔쳐보곤 일본인 점원에게 부탁하는 편입니다.
일하기 싫은 마음을 감추지 못하거나 일본어를 못 알아들어서 손님이 역정을 내는 아르바이트생 본인의 문제,
혹은 외국인이 접객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닫힌 마인드의 일부 일본인.
4.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어제도 TV에서는 지방공무원의 제한적인 겸직 허가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몇몇 지방에서 일손이 부족해서 무엇보다 1차산업과 관련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도, 일본인 어르신들도 일할 수 있는 이곳 도쿄.
조금 더 과학기술이 발전되고 좋은 기술이 상용화되어 어르신도 젊은 사람들과 같이 단순접객에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게 된다면,
언어 문제, 접객 태도, 국적에서 불리한 면을 가진 외국인은 자연스레 밀려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까지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으로만 남아있기에는 장기적으로 아무런 경쟁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는 구형 화장실을 개선해나가고 유학생 30만명을 목표로 하는 일본.
과도할 정도로 강요받는 서비스 정신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저는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2018년 어느 봄에 쓰여진 글입니다. 글 작성시와 투고 시점이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