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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기간에 레스토랑에 갔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아예 식사를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메뉴를 골랐는데, 웨이터가 오지 않는다.

이상하다싶어 담당 웨이터 A에게 눈빛을 발사했더니 그가 와주었다.

알고보니 예약인원수에 착오가 있었는듯, 일행이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카프레제를 전채로 주문했더니

우리가 고른 메뉴에 토마토가 중복이 되어 신경이 쓰이는지, 괜찮냐고 물어봐주어 메뉴를 바꾸었다.

와인도 그가 권하는 것으로 마시기로 했다.

 

서빙은 굉장히 천천히 이루어졌다.

평일에는 빠른 속도로 나온다고 하니, 주말은 완전 예약제인만큼 일부러 천천히 내온 것일지 모른다.

코스 메뉴로 주문했다면 모를까, 이것저것 주문하긴 했어도 식전주가 나온 뒤로도 좀처럼 메뉴가 나오질 않았고...

 

그래서일까? 뒷쪽 테이블에 앉은 다른 손님이 너무 신경이 쓰였다.

이곳은 전부예약제인데, 먼저 있었던 손님들은 내가 주문할 쯤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카시스를 홀짝이고 있을 때는 다른 손님이 자리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나중에 자리한 손님의 목소리가 작지 않은데다 쉬지않고 계속 이야기를 하니,

대각선 앞쪽에 앉은 나로서는 계속 그사람의 이야기가 귀에 들릴 수밖에 없었다.

주문을 계기로 웨이터 B와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증여, 세무사 소개 이야기, 본인의 사업, 출신 등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들어온다.

전부터 신경이 쓰이기는 했어도 손님끼리의 대화이니 

(직접적으로 피해받고 있지만) 참견할 권리가 없다싶어 참았다.

 

그러나, 웨이터가 그것을 받아주며 되려 손님의 이야기를 이끌고 있으니...

안그래도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서 신경쓰이는데, 상대는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결국 마지막 요리가 나올 때쯤 되니 얼른 먹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요리가 나오질 않는다.

빨리 내어달라고 부를 수도 없고...

요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 음식이 나올 때까지도 대화는 계속되었다.

참다못해,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고개를 돌려 웨이터를 쳐다본 다음에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웨이터B는 내 행동에 눈치를 챘는지, 이내 대화를 중단하고 자리를 떴다.

일행이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는데,

내가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것을 읽었으니 그말이 틀리지는 않을 거다.

 

 

재빠르게 접시를 비우자,

내가 웨이터B에게 무언의 항의를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웨이터A가 다시 왔다.

식후 디저트로는 뭐가 맛있다고 설명하면서 메뉴판을 다시 주는데, 

이곳에서 커피든 뭐든 즐길 기분이 나지않았다.

 

웨이터B가 떠난 이후로 대화는 조금 줄어들었지만, 

이미 불쾌감이 가득해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자주 가는 가게에 일부러 초대해준 것이라, 상대방의 체면이라는 것이 있어서

웨이터A의 설명을 들은 후에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 메뉴를 내려놓고 계산을 부탁했다.

요리는 괜찮았냐는 그의 질문에 "요리는 맛있었는데요."라고

유치하게 여운을 남기기는 싫어서,

"네, 맛있었어요."라고 짤막하게 답을 하고 말았다.

 


 

 

우아한 척하며 '먹이는 법' 같은 걸 알고 있으면 뭐하나.

결국 내 무례함을 포장해서 불만을 표하는 게 아닌가?

 

일본 사람들 특유의 스킬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만을 토로않고, 발걸음을 끊는다.

 

일본에서 장사하는 한국사람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가 당황했던 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갑작스레 다시는 안 온다"고.

 

화를 내는 것도 나의 기대치가 있는데 그것에 못미칠 때, 화가 나는 것이라서

애정없는 가게에 자신의 시간을 들여, 문제점을 지적해가며 화를 내는 손님은 별로 없다.

 

한국같으면 불쾌한 경험을 하면 별점 1점을 주고 다시는 안간다고 하겠지만,

내가 느끼는 일본은 별점 1점은 커녕 본인의 흔적을 싹 지운다.

 


 

 

 

손님을 잘 띄워주고, 분위기를 잘 읽고, 소리내어 부르지 않고 눈빛을 보내면 알아서 척 다가오는 센스는 굉장히 중요하다.

서비스료를 청구하는 곳이라면 보통은 그럴 것이라 기대하지 않을까.

맛이 있어도 이런 행동을 잘하는 웨이터가 있는 가게에 손님이 더욱 몰린다.

그러니 웨이터는 틀리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요리와 식사 분위기를 즐길 수 없어서 내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가게를 나서서 3분 정도 걸었을까.

완전 개별실이라고 간판을 내건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왜 이런 곳을 찾는가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때가 되었구나 싶다.

 

나는 아직도 기대치가 너무 높은 걸까.

그저 인내심이 부족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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